왜 우리는 ‘책올림’의 시대를 살고 있는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책올림’이라는 말은 낯설었다. 그런데 요즘은 주변에서도 심심찮게 듣는다. 책을 읽고 정리하는 취미, 아니 거의 생활 방식이 된 이 흐름은 대체 왜 이렇게 확산된 걸까. 나도 직장 다니며 틈틈이 책장을 정리하고 독서 노트를 쓰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처음엔 단순한 정리 습관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주변 사람들이 ‘그거 어떻게 하는 거야?’라고 묻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이 트렌드의 배경을 찾아보게 되었다.

사실 ‘책올림’은 단순한 신조어가 아니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2023 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성인 독서율은 2019년 이후 계속 하락세지만, 독서 동호회나 독서 기록 앱 사용자는 오히려 증가했다고 한다. 즉, 책 자체를 읽는 사람은 줄었지만, ‘읽은 경험’을 기록하고 공유하는 사람은 늘었다는 뜻이다. 이것이 바로 책올림 현상의 핵심이다. 책을 읽었다는 사실을 정리하고 인증하는 행위가 하나의 문화 코드로 자리 잡은 것이다. 예를 들어, 직장인 A 씨는 매주 토요일 아침을 ‘책올림 타임’으로 정하고, 그 주에 읽은 책의 핵심 문장과 감상을 인스타그램에 올린다. 처음에는 혼자 시작했지만, 지금은 500명이 넘는 팔로워가 그의 기록을 기다린다고 한다. 이런 개인적 사례는 책올림이 단순한 취미를 넘어 하나의 사회적 연결고리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흐름은 해외에서도 비슷하다. 미국의 굿리즈(Goodreads) 사용자는 2023년 기준 1억 5천만 명을 넘겼고, 일본에서는 ‘독서 노트’가 베스트셀러로 오르기도 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굿리즈는 독서 목록 관리와 리뷰 기능으로 시작해 지금은 출판사와 작가의 마케팅 채널로도 활용된다. 결국 ‘기록’과 ‘공유’가 독서 행위의 본질적 즐거움을 확장시킨 셈이다. 또한, 프랑스에서는 ‘비블리오테라피’라는 용어가 유행하며, 독서 기록이 정신 건강에 도움을 준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책을 읽고 정리하는 과정이 단순한 취미를 넘어 치유의 도구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모든 책올림이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나도 초창기에는 ‘많이 정리한 사람’이 되기 위해 양에 집착했다. 하루에 5권씩 정리하고 인증샷을 올리며 허세를 부렸다. 그러다 문득 이게 진짜 나의 독서 생활에 도움이 되는지 의문이 들었다. 정작 중요한 것은 ‘기록’이 아니라 ‘읽고 느낀 것’을 자신의 언어로 재구성하는 과정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주관적 큐레이션’이라고 부른다. 책을 단순히 배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과 감상을 덧입혀 재탄생시키는 작업인 것이다. 예를 들어, 한 독서 모임에서는 참가자들이 같은 책을 읽고도 각자 다른 주제에 집중해 기록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는 책이 개인의 삶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다.

실제로 한 연구에 따르면, 자신의 독서 경험을 글로 정리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독해력과 비판적 사고력이 유의미하게 향상되었다고 한다. 네이버 검색을 통해 관련 논문을 찾아보면, 정리 행위가 단순 암기가 아닌 이해와 연결을 촉진한다는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책올림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인지적 훈련에 가깝다. 한 대학 연구팀의 실험에 따르면, 독서 후 10분간 요약을 작성한 그룹은 그렇지 않은 그룹보다 일주일 후 내용 기억률이 40% 높았다고 한다. 이는 기록이 단순한 취미를 넘어 학습 효과를 극대화하는 도구임을 입증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책올림을 더 의미 있게 실천할 수 있을까. 첫째, ‘왜’ 정리하는지 목적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단순히 SNS에 올리기 위한 것인지, 진정한 자기 성찰을 위한 것인지 구분해야 한다. 둘째, 자신만의 기준을 세우는 것이다. 같은 책을 읽어도 사람마다 강조점이 다르듯, 정리 방식도 개인화되어야 한다. 셋째, 완벽주의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처음부터 완벽한 기록을 만들려고 하면 오히려 부담이 된다. 나도 처음에는 노트 한 권을 꽉 채워야 직성이 풀렸지만, 지금은 핵심 문장 하나와 느낌 한 줄만 적어도 만족한다. 또한, 정리 방식을 다양화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예를 들어, 마인드맵을 활용하거나 책 속의 인상 깊은 구절을 필사하는 등 자신에게 맞는 방식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또 한 가지 주의할 점은 ‘과시적 정리’에 빠지지 않는 것이다. 인스타그램이나 블로그에 예쁜 책 사진을 올리는 것은 재미있지만, 그 과정에서 진정한 독서의 즐거움이 사라질 수 있다. 나 역시 예쁜 서재 사진을 찍기 위해 책장을 인테리어 소품처럼 다루던 적이 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책이 아니라 ‘사진’을 위해 책을 읽고 있다는 생각에 반성했다. 중요한 것은 나만의 속도와 방식으로 책과 대화하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다. 한 친구는 책올림을 위해 일부러 카페에 가서 종이 노트에 손글씨로 기록하는데, 그 과정에서 오히려 더 집중이 잘 된다고 말한다. 디지털 도구보다 아날로그 방식이 더 잘 맞는 사람도 있음을 보여주는 예다.

책올림이 단순한 유행을 넘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으려면, 양보다 질에 집중해야 한다. 최근에는 도서관이나 독립서점에서 책올림 워크숍이 열리기도 한다. 참가자들은 서로의 독서 노트를 공유하고, 큐레이션 노하우를 나누며 공동체적 지식을 쌓아간다. 이런 활동은 개인의 취미를 넘어 사회적 연결의 도구가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예를 들어, 서울의 한 독립서점에서는 매월 ‘책올림 나이트’를 열어 참가자들이 자신의 독서 노트를 발표하고 토론하는 시간을 가진다. 이 행사는 단순한 기록 공유를 넘어, 다양한 관점을 접하고 생각의 폭을 넓히는 장이 되고 있다.

결국 책올림은 ‘책을 통해 나를 정리하는 행위’다. 책장을 넘기며 과거의 나와 마주하고, 현재의 생각을 기록하며 미래의 나에게 메시지를 남기는 것이다. 직장 생활에 치여 바쁜 나날을 보내지만, 책 한 권과 노트 한 권만 있으면 언제든 나만의 작은 우주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참 위안이 된다. 앞으로도 이 취미를 꾸준히 이어가며, 더 깊이 있는 정리를 해나가고 싶다. 특히 요즘은 전자책과 오디오북이 늘면서, 책올림 방식도 다양해지고 있다. 전자책에 하이라이트를 하고 이를 자동으로 정리해주는 앱을 사용하는 사람도 있고, 오디오북을 들으며 음성 메모로 감상을 남기는 사람도 있다. 기술의 발전이 오히려 책과의 대화를 더 풍부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물론 책올림이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활동은 아니다. 어떤 이는 책을 읽은 후 아무 기록 없이 잊어버리는 것을 더 편하게 느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나에게 맞는 방식’을 찾는 것이다. 무조건 따라 하기보다 자신의 라이프스타일과 성향에 맞춰 조금씩 변형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나도 처음에는 유명 블로거의 방식을 그대로 따라 하다가 실패한 경험이 많다. 지금은 내가 좋아하는 책, 내게 의미 있는 구절 위주로만 정리한다. 예를 들어, 나는 소설보다는 에세이와 인문학 책을 선호하는데, 그래서 내 독서 노트는 주로 삶의 지혜나 통찰을 담은 문장들로 채워져 있다. 이렇게 자신의 취향을 반영한 정리는 더 오래 기억에 남고, 나중에 다시 읽어도 감동이 새롭다.

마지막으로, 책올림을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한 가지 조언을 하자면, ‘기록의 완벽함’보다 ‘기록의 지속성’에 집중하라는 것이다. 하루에 한 줄이라도 좋다. 꾸준히 쌓인 기록은 나중에 자신만의 인생 지도가 되어 돌아온다. 나도 몇 년 전의 독서 노트를 다시 펼쳐보면 그때의 생각과 지금의 생각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선명하게 보인다. 이렇게 책은 시간의 흐름을 기록하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실제로 나는 3년 전에 읽었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다시 꺼내 보며, 그때는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깨달음을 얻기도 했다. 책올림은 단순한 기록을 넘어, 자신의 성장 과정을 돌아보는 거울과도 같다.

책올림의 시대, 우리는 왜 이렇게 기록에 집착하는 걸까. 아마도 디지털 시대에 흩어지는 자신의 정체성을 붙잡기 위한 몸부림이 아닐까. 책이라는 아날로그 매체에 손글씨로 기록하는 행위는,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나만의 속도를 지키는 방법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책장 앞에 앉아, 한 권의 책을 꺼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