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 앞에서 만난 나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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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나는 책장을 다시 정리하고 있다. 얼마 전에 책과 지식의 미래에 대한 한겨레 기사를 읽었는데, 거기서 ‘디지털 시대에도 종이책의 물리적 공간이 주는 안정감은 여전히 중요하다’는 대목이 마음에 꽂혔다. 실제로 나는 매일 전자책 앱을 켜지만, 여전히 손에 쥐는 감촉을 포기하지 못한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면, 단순히 내용 때문만은 아니다. 예를 들어, 지난주에는 전자책으로 샘플만 읽다가 결국 종이책을 주문한 일이 있었다. 화면에서 스크롤할 때는 몰랐는데, 실제 책장에 꽂아두니 표지의 무광 코팅이 손끝에 와닿았고,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집 안을 채웠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디지털은 정보를 전달하지만, 종이는 경험을 선사한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요즘 전자책과 종이책을 병행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출퇴근 길에는 가벼운 전자책 리더를, 집에서는 무게감 있는 종이책을 든다. 이렇게 이중 생활을 하다 보니, 책장은 단순한 보관함을 넘어 내 디지털과 아날로그 자아가 공존하는 장소가 되었다.

책장 앞에서 만난 나 자신

책올림이라는 취미는 단순히 책을 고르는 행위를 넘어선다. 나는 그것을 ‘정돈된 공간에서 나와 책이 만나는 의식’이라고 정의한다. 예를 들어, 주말 아침에 커피 한 잔을 옆에 두고 베스트셀러 목록을 훑는 대신, 먼저 서가에 꽂힌 책들 중에서 오늘의 기분에 맞는 한 권을 고른다. 표지의 질감, 페이지 냄새, 심지어 앞주인의 낙서까지—모두가 그 책의 이야기다. 이런 과정이 나에게는 일종의 명상과도 같다. 작년 가을, 나는 중고 서점에서 헌책 한 권을 샀다. 1980년대 초판본인 그 책에는 앞주인이 연필로 써놓은 메모가 군데군데 남아 있었다. ‘이 구절이 오늘의 나를 울렸다’ 같은 짧은 문장이었지만, 그 낙서를 읽는 순간 나는 낯선 누군가와 시간을 초월한 대화를 나누는 기분이 들었다. 그 경험 이후로 나는 책올림을 할 때마다 ‘이 책이 어떤 손길을 거쳐 내게 왔을까’를 상상한다. 그 상상이 책장을 더욱 살아있는 공간으로 만든다.

하지만 여기서 주의할 점이 있다. 책올림이 지나치면 오히려 스트레스가 된다는 사실이다. 예전에 나는 모든 책을 ‘읽어야 할 책’과 ‘읽은 책’으로 엄격히 구분하며 관리하다가 오히려 책장 앞에서 불안감을 느꼈다. ‘아직 안 읽은 책이 쌓여 있어’라는 죄책감이 밀려왔다. 그때 깨달았다. 책올림의 본질은 완독이 아니라 ‘선택과 배치를 통해 나만의 정서적 지형도를 만드는 일’이라는 것을. 실제로 나는 3년 전부터 ‘읽지 않은 책 코너’를 따로 만들었다. 그곳에는 아직 손도 대지 못한 책들이 쌓여 있지만, 나는 더 이상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대신 그 코너를 ‘미래의 나를 위한 선물’이라고 부른다. 언젠가 그 책들을 읽을 날이 오겠지만, 지금은 단지 그 존재만으로도 설렘을 준다. 이렇게 마음의 여유를 찾은 후, 나는 책장 정리가 더 이상 의무가 아니라 즐거움이 되었다.

최근에는 이 인접 영역으로 영화와 드라마에도 관심이 갔다. 특히 넷플릭스 시리즈 ‘더 에이트 쇼’를 보면서, 인간이 공간을 어떻게 점유하고 정리하는지가 이야기의 핵심 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등장인물들이 좁은 방에 물건을 배치하는 방식은 책장을 채우는 나의 행동과 무척 닮아 있었다. 결국 우리는 모두 어떤 그릇에 자신을 담아내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주인공이 방 한쪽 벽에 사진을 붙이고, 다른 쪽에는 책을 쌓아 올리는 장면을 보며 나는 내 책장이 떠올랐다. 나는 책을 장르별로 나누는 대신, 표지 색깔이나 내가 느끼는 ‘분위기’에 따라 배치한다. 어떤 날은 파란 표지의 책들만 모아놓고, 어떤 날는 두꺼운 문학 전집을 한 줄로 늘어세운다. 이렇게 배치할 때마다 나는 마치 방의 에너지를 조율하는 기분이 든다. ‘더 에이트 쇼’의 등장인물들이 물건을 통해 자신의 영역을 표시하듯, 나도 책장을 통해 나만의 정서적 지도를 그리는 것이다.

일상적인 시사로 이야기를 옮겨보자. 얼마 전 직장에서 ‘하이브리드 워크’가 본격화되면서, 내 집 책상 위의 공간도 다시 정리하게 되었다. 모니터, 키보드, 그리고 책 세 권이 한정된 공간을 차지한다. 이 작은 공간이 내 하루의 시작과 끝을 결정한다는 게 신기하다. 통계청의 생활시간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평균 독서 시간은 하루 6분에 불과하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그 6분이 아니라, 책을 고르고 정리하는 그 ‘준비 과정’ 자체에 더 많은 시간을 쓴다. 그것이 나만의 의식이다. 예를 들어, 아침에 출근하기 전 나는 반드시 책상 위의 책 세 권을 다시 배열한다. 가장 위에 놓인 책이 오늘의 기분을 결정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월요일에는 가벼운 에세이를, 금요일에는 두꺼운 소설을 올려놓는다. 이 작은 의식이 내 하루의 리듬을 만들어준다. 또한, 점심시간에 잠깐 집에 들를 때면 책장 앞에 서서 몇 분간 서 있다. 그냥 서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차분해진다. 통계청 조사가 말해주듯 한국인은 독서 시간이 짧지만, 나는 그 시간을 ‘책과 함께하는 순간’으로 확장하고 있다.

주의해야 할 점은, 이 취미가 소비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책올림은 큐레이션의 일종이지만, ‘이 책을 사야 내가 완성된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 나도 한때는 ‘이 달의 책’ 코너에서 무조건 한 권씩 샀다. 결과적으로 집에는 안 읽은 책이 더미처럼 쌓였고, 오히려 선택의 피로만 늘었다. 지금은 ‘한 번에 한 권만 꺼내고, 다 읽으면 다시 서가로 돌려보낸다’는 원칙을 세웠다. 공간의 여유가 마음의 여유를 만든다는 걸 몸소 체험했다. 이 원칙을 세운 후, 나는 도서관을 자주 이용하게 되었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은 반납 기한이 정해져 있어 더 집중해서 읽게 된다. 또한, 책을 사지 않음으로써 생긴 여유 비용으로 가끔은 좋은 커피나 꽃을 산다. 그런 작은 사치가 책장을 바라보는 내 마음을 더욱 풍요롭게 만든다. 결국 책올림은 책 자체보다 그 책이 만들어내는 삶의 여백에 관한 것임을 깨달았다.

블로거로서 나는 가끔 이런 이야기를 하면 ‘왜 그렇게 엄격하냐’는 반응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책올림은 나에게 단순한 취미를 넘어, 매일 아침 내 정신을 정돈하는 도구다. 책장 앞에 서서 오늘 읽을 책을 고르는 그 10분 동안, 나는 수많은 선택지 중에서 오직 하나를 고른다. 그 결정이 하루를 산다. 예를 들어, 어느 날 나는 고민 끝에 두꺼운 역사책 대신 얇은 시집을 골랐다. 그날 오후, 예상치 못한 회의가 취소되어 집에 일찍 돌아왔고, 나는 그 시집을 펼쳐 30분 동안 읽었다. 그 시집의 한 구절이 오랫동안 고민하던 일에 대한 해답을 주었다. 만약 그날 내가 역사책을 골랐다면, 그 해답은 영원히 찾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책장 앞에서의 선택은 단순한 취미를 넘어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작은 나침반이 된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조언하자면, 책올림을 처음 시작할 때는 ‘무조건 버리고 줄여야 한다’는 강박을 버리길 바란다. 대신 ‘이 책이 지금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를 물어보는 것부터 시작해보자. 나는 그 질문 하나로 책장이 완전히 달라졌다. 당신의 책장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나? 나는 당신의 책장 앞에서 당신이 어떤 선택을 할지 궁금하다. 어쩌면 그 선택이 당신의 오늘을 바꿀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