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 위의 법정, 그리고 사람 냄새
정의

책올림으로 시작한 하루가 많아졌다. 책장을 정리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세상의 이슈도 곁눈질하게 된다. 특히 가족 간의 갈등이 법정으로 번진 이야기는 유독 오래 남는다. ‘형제의 난’이라 불리는 사건, 오랜 시간 법정에서 맞붙은 형제의 이야기가 언론에 오르내렸다. 누군가는 재벌가의 스캔들로 치부하지만, 나는 그 안에서 ‘정리되지 않은 감정’을 본다. 책장의 책들도 정리하지 않으면 먼지가 쌓이듯, 사람의 관계도 정리하지 않으면 상처가 쌓인다. 법정은 그렇게 쌓인 감정의 먼지를 터는 자리가 된다.
사실, 나는 책을 정리할 때마다 그 물리적 행위가 주는 위안이 있다. 손때 묻은 책등을 털고, 분류를 다시 하고, 읽을 책과 버릴 책을 가르는 과정은 단순한 정리를 넘어 일종의 의식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의 감정도 책처럼 분류하고 정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감정은 표지가 없는 책과 같아서, 겉으로 보기엔 평범해도 속을 열면 예상치 못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법정에서 맞서는 형제들의 감정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겉으로는 재산과 권력의 다툼으로 비치지만, 그 이면에는 어린 시절의 기억, 부모의 편애, 오랜 세월 쌓인 서운함 같은 것들이 뒤엉켜 있을 터다.
예시
며칠 전 본 기사 중에 효성家 형제의 재판에 관한 내용이 있었다. 형이 동생의 처벌을 원한다는 이야기였다. 형제가 법정에서 마주한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하다. 어릴 적 함께 뛰놀던 형제가 서로를 증인석에 세우는 모습을 상상하면, 책 한 권이 통째로 지워진 듯한 허전함이 밀려온다. 특히 재벌가의 경우, 재산과 권력이라는 무게가 인간관계를 짓눌러 버린 사례다.
이런 사건을 접할 때마다 나는 문득 어린 시절 내 형제와의 다툼이 떠오른다. 장난감 하나를 두고 다퉜지만, 결국 엄마가 개입해서 반으로 나누거나 한쪽을 양보하게 만들었다. 그때는 그게 세상에서 제일 큰 갈등인 줄 알았다. 하지만 성인이 되고 나니, 그 작은 다툼조차도 서로에 대한 이해와 양보가 없으면 큰 상처로 남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형제 간의 다툼은 법정까지 가기 전에, 대화와 화해로 풀 수 있는 문제다. 그러나 재벌가에서는 재산의 규모가 너무 커서, 감정보다 숫자가 우선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숫자에 눌려 감정은 뒷전으로 밀리고, 결국 법정은 감정의 무덤이 되어버린다.
이와 비슷하게 노태우 비자금과 관련된 압수수색도 떠올랐다. 이혼 소송 과정에서 과거의 비자금 의혹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한 개인의 이혼이 사회적 의혹으로 번지는 모습은, 책꽂이에서 오래된 책 한 권이 다른 책들을 모두 무너뜨리는 것과 같다. 원인은 하나였지만 결과는 주변 전체로 퍼져 나간다. 이 사건들은 모두 ‘정리되지 않은 것들’이 결국 폭발하는 지점을 보여준다.
이 사건을 보며 나는 한 가지 통계를 떠올렸다. 대한법률구조공단의 자료에 따르면, 가사 사건 중 이혼 소송의 상당수가 재산 분할과 양육권 문제로 번진다고 한다. 이는 감정적 갈등이 경제적 문제로 확대되는 전형적인 패턴이다. 사람들은 감정을 정리하지 않은 채 법정으로 가지만, 법정은 감정을 해결해주지 못한다. 오히려 법정은 명확한 판단을 내릴 뿐, 그 뒤에 남는 감정의 골은 더 깊어질 때가 많다. 그래서 나는 법적 분쟁을 바라볼 때마다, 그 이면에 있는 ‘정리되지 않은 감정’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이런 복잡한 관계 속에서 우리는 때로 전문가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법적 분쟁은 감정만으로 풀리지 않을 때가 많다. 나도 주변에서 상속 문제나 이혼 문제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보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창구를 알아두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낀다. 예를 들어 법적 절차를 밟아야 하는 상황이라면 음주운전전문변호사처럼 해당 분야에 전문성을 갖춘 변호사의 자문을 구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 수 있다. 물론 내가 법률 전문가는 아니지만, 정리되지 않은 문제를 혼자 끌어안기보다는 주변의 도움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은 책을 정리할 때 서점이나 도서관의 분류 체계를 참고하는 것과 비슷하다. 혼자서 모든 책을 분류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고, 잘못 분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면 효율적으로 정리할 수 있고, 더 나은 분류를 찾을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법적 문제도 변호사의 도움을 받으면,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물론 변호사가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결국 결정은 당사자가 내려야 하고, 그 과정에서 감정을 정리하는 것은 본인의 몫이다. 전문가는 단지 길을 안내하는 역할일 뿐이다.
책을 정리하다 보면 ‘분류’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인문학, 소설, 에세이, 전문서적을 제목과 주제에 따라 나누듯, 인생의 문제도 유형별로 접근하면 해결의 실마리가 보인다. 법정 다툼도 결국 ‘관계의 분류’ 실패에서 비롯된다. 서로의 역할과 경계를 제대로 정리하지 못했을 때 갈등은 커진다. 그래서 나는 책장을 정리할 때마다 인간관계도 점검하게 된다.
예를 들어, 책장에는 ‘읽고 있는 책’과 ‘읽을 책’, ‘다 읽은 책’이라는 임시 분류가 있다. 이처럼 인간관계도 ‘현재 집중해야 할 관계’, ‘소홀히 하고 있는 관계’, ‘정리해야 할 관계’로 나눠볼 수 있다. 물론 사람을 책처럼 취급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지만, 스스로의 관계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도움이 된다. 나는 책장을 정리하면서 각 책에 담긴 기억을 떠올리듯, 각 인연이 주는 의미를 되새긴다. 어떤 책은 다시 읽고 싶고, 어떤 책은 누군가에게 선물하고 싶다. 관계도 마찬가지로, 어떤 인연은 다시 연결하고 싶고, 어떤 인연은 정리하고 싶을 때가 있다.
주의점
하지만 법정 다툼을 단순히 ‘정리’라는 개념으로만 보는 것은 위험하다. 법적 분쟁은 사람의 감정과 삶이 걸린 문제다. 책장의 책은 버리거나 옮기면 그만이지만, 사람의 관계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특히 법정에서 맞서는 과정은 당사자뿐 아니라 가족 모두에게 깊은 상처를 남긴다. 언론에 보도된 사건들을 보면, 승소나 패소보다 더 오래가는 것은 그 과정에서 생긴 감정의 골이다.
한 예로, 어떤 상속 분쟁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그 사건에서 형제들은 수년간 법정 다툼을 벌였고, 결국 한쪽이 승소했지만 그들은 더 이상 형제로 지내지 못했다. 승소한 쪽도 패소한 쪽도 모두 패배자였던 것이다. 그들은 재산을 얻었을지 몰라도, 형제애를 잃었다. 이처럼 법정 다툼은 승자가 없는 싸움일 때가 많다. 그래서 나는 법적 분쟁을 바라볼 때, ‘정리’라는 단어가 주는 깔끔함보다는 ‘상처’라는 단어가 주는 무거움을 더 생각하게 된다.
또한 대중의 시선도 주의해야 한다. 유명인의 법정 다툼은 구경거리가 되기 쉽지만, 그 이면에는 각자의 사연이 있다. 우리가 뉴스에서 보는 것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한겨레의 관련 보도에서도 드러나듯, 사건의 전말은 언론의 프레임에 따라 다르게 비춰질 수 있다. 따라서 남의 일을 평가하기보다는, 우리 자신의 관계를 돌아보는 계기로 삼는 것이 낫다.
나는 뉴스 댓글을 읽다 보면 사람들이 법정 다툼을 마치 드라마처럼 소비하는 모습을 자주 본다. 하지만 그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실제로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사연은 단순한 오락거리가 아니다. 우리가 그들의 상황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그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존중하는 태도는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법정 다툼을 접할 때면, 그 사람들의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해보려고 노력한다. 만약 내가 그들의 입장이라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그런 상상은 나를 더 겸손하게 만든다.
결국 모든 것은 ‘정리’에서 시작된다. 책장을 정리하듯, 마음도 정리하고 관계도 정리하는 것. 그것이 법정까지 가지 않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아닐까. 나는 오늘도 책장을 정리하며, 사람 사이의 온기를 담은 책 한 권을 꺼내 든다.